‘해방 후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다. 일제 식민주의자들에 의한 식민주의사관도 바로잡아야 하지만 동시에 민족주의 내지는 국수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되고 미화되어진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검증도 여러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이준의 사인(死因)에 관한 문제도 이와 같은 추세에서 제기되었다.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던 내용과 차이가 있음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고 더 이상 자살설로 국민을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이준 열사의 생애와 국권회복운동’, ‘2009년 상반기시민강좌자료집’, 서울YMCA시민논단위원회, 2009)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헤이그 밀사 가운데 이준에게는 ‘열사(烈士)’ 칭호가 붙어 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회의장에서 할복 자결해 민족 자긍심을 높인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미 식민 시대에 이준 열사의 사인 논란이 있었고,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에는 본격적인 논쟁이 불붙었다. … 더보기